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뒤발 납치 사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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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 납치 과정 == [[파일:마레스코 교차로 도면.png]] 사건 현장 도면. 앙리 뒤발은 1977년 4월 5일 화요일 오전 8시 30분경 벨포르 오슈가의 자택을 나섰다. 이날 오전 의회에서 예정된 비공개 협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다. 차량은 두 대로, 뒤발이 탄 승용차와 경찰 경호 차량이 뒤따랐다. '''오전 8시 40분''' 자택에서 약 400미터 떨어진 마레스코 교차로에서 앞쪽 차량 한 대가 급정거해 뒤발의 차량을 막았다. 동시에 뒤쪽에서 다른 차량이 경호 차량의 후미를 들이받아 두 차량을 고립시켰다. 실행조 11명이 인도 양쪽에서 접근해 사격을 시작했다. 경호 차량의 경찰관 3명은 하차하지 못한 채 사망했고, 뒤발의 차량 운전기사 기욤 R. 아셰는 문을 열고 내리려다 사살되었다. 조직은 뒤발만을 살려 두었으며, 그를 세 번째 차량으로 옮긴 뒤 현장을 이탈했다. 전 과정에 소요된 시간은 약 90초로 파악된다. 사용된 탄약은 82발이며, 이 가운데 뒤발의 차량을 향해 발사된 것은 없었다.[* 실행조가 뒤발의 좌석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근거로, 사전 정찰이 장기간 이루어졌다는 분석의 주된 자료가 된다.] 조직은 이후 성명에서 두 달간 뒤발의 이동 경로를 관찰했다고 주장했으며, 실제로 뒤발은 출퇴근 경로를 변경하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. '''오전 8시 52분''' 인근 상점 주인의 신고로 경찰이 도착했다. 현장에는 두 대의 차량과 사망한 경호원 4명이 남아 있었다. '''오전 10시 20분''' 벨포르 시내 일간지 두 곳에 조직의 제1성명이 배달되었다. 성명은 뒤발을 인민의 이름으로 구금했으며 조직 내부의 재판에 회부한다는 내용이었다. '''오후''' 정부는 긴급 국무회의를 열고 비상 검문 체제를 선포했다. 이후 51일간 벨포르와 인접 지역에서 실시된 검문은 연 34만 건, 수색을 받은 건물은 6,100동이었으나 은신처는 발견되지 않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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